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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행

영월 들여다보기 - 장릉

2010.2.20 영월 들여다보기 - 장릉

청주에서 7시 30분 출발...
10시 30분이 좀 안 되어 장릉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의 코스는 장릉-고씨동굴-청령포-한반도지형을 들여다보기로 하였습니다.
2월의 셋째 주 토요일이 마치 가을 같은 파란 하늘을 보여줍니다.
약간을 쌀쌀한 듯하지만, 상쾌함이 더 큰 것 같네요.

장릉은 2009년 6월 27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간략히 영월군청의 소개자료를 인용해 봅니다.

" 17세의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부왕인 문종이 일찍 죽어 12세에 임금이 되었으마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세조3년) 결국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단종이 승하하셨을 때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거두어 모신 곳이 바로 장릉이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 자료 : 영월군청

역사 속 한 자리를 있는 장릉을 들여다 봅니다.



매표소에 도착합니다. 매표소 앞 큼직한 주차장이 있습니다.
매표 정보는 하단에. 첨부합니다.


단종역사관 모습. 단종에 관련된 유물과 여러 자료들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실내 촬영이 안 되어 내부소개는 지나갑니다.


장릉으로 향하는 길은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단종역사관 좌측으로 위 사진으로 보시는 건물들을 따라 가운데로 가서
정자각 못 미쳐 오르는 길이 있구요.
단종역사관 우측으로 산책길을 걷듯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정려각입니다.
" 정려각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년(순조 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년 (고종 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년 (고종 16년)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자료 영월군청)


배식단사입니다.
"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놓은 곳이다.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낸다." (자료 영월군청)


홍살문이 보입니다. 홍살문 안쪽으로 영천이라 불리우는 우물담이 작게 보이네요.



정자각입니다.
" 한식날인 단종제향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자료 영월군청)


영천입니다. - 가까이서 우물 사진을 좀 더 크케 찍었어야 하는데 깜빡 놓쳤네요. 비석 밑에 사각형 돌이 우물돌입니다.
"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날 제사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솟아 올랐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자료 영월군청)


영천 옆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 - 이름이 생각이 안 납니다.


수복실입니다.
수복실은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정면 2간, 측면 1간 건물로, 장릉 경내 홍살문 북쪽 5m 지점 비각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단종대왕신도비」의 비각 건립때 같이 조성되었다.
[참고문헌]한림대학교박물관·강원도·영월군, 1995,《영월군의 력사와 문화유적》;단종제위원회, 1997,《장릉에 향을 사르며》.


단종비각입니다.
" 1698(숙종24년)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영조 9년에 비각과 수복실, 정자각을 세웠다. 비석전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라 쓰여있다." (자료 영월군청)


장릉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오르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작은 흙길, 오솔길이 아쉽습니다.


장릉 앞에서 내려다본 정자각, 영천입니다.
마주한 작은 산의 경치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장릉을 정면과 좌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임금의 능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합니다.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 유배 후 사약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장릉에서 낙촌비각방향으로 내려오는 나무 계단



낙촌비각입니다.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 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길이 없어 풍설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군리(郡吏)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신하가 둘러서 모시고 있었다.
임금을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 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 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 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자료 영월군청) 


약 1시간 반 정도를 장릉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제 배가 고파옵니다.
장릉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와 개울 쪽으로 살짝 올라오면 장릉보리밥집이 나옵니다.



식당 입구에 고무물통을 모자로 쓰고 벽돌을 입에 물고 있는 험상궂은
눈사람이 맞이해 주세요.


보리밥 한 상입니다.
밥 속에 감자가 들어있는데, 위에 보이는 나물들을 모두 넣고 함께 비벼먹으니,
감자가 으깨져 아주 부드러운 보리밥에 감자맛이 베어 담백하네요.


별도로 같이 주문한 손두부.
양념 맛이 아주 감칠납니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적당한 가격인 듯 합니다.
한끼 머물러 먹기에 손색이 없네요.

영월에 들러볼 곳이 많지만, 꼭 한 번 들러 볼 곳임에 분명한 장릉이었습니다.

영월 들여다보기 - 장릉 편
다음 편에 영월들여다보기 - 고씨동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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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청 관련정보
http://www.ywtour.com/kor/CMSView.php?pid=378

개장시간 : 동계: 09:00~17:00   하계: 09:00~18:00
이용요금
 구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인    1200     1200     1400      노인(65세이상) 무료
단체    800     800     1200      30인이상
군민(개인/단체)    600(400)     600(400)     700(600) 
 
주차장이용 이용료 없음

자가용
|서울 |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제천I.C(38번국도) → 서영월 나들목 → 장릉방향 우회전(59번국도) → 장릉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신림I.C(88번국도) → 주천(영월방향) → 북쌍삼거리(좌회전) → 영월삼거리 → 장릉
대중교통
영월~장릉 시내버스 07:00-20:00, 20분 간격 운행